1.4 OS2의 역사(순수백수님 정리버전)
번역 및 작성 : 순수백수 올림 : 2007년 3월 19일 의문점이 있거나 수정할 내용은 언제든지 관리자 그룹을 통해서 연락 바랍니다. IBM OS/2의 역사 1981년 : IBM Personal Computer(PC)의 출시 그리고 DOS 1981년 IBM은 Personal Computer를 개발하였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운영체제가
필요한데
애초 IBM은 자체적으로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할 의사는 없었다. IBM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PC의 하드웨어 판매를
통한 사업이었을
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IBM은 자신들의 PC를 구동 시킬
운영체제를 만들어 줄
업체들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우선 접근한 것이 당시 마이크로컴퓨터용 운영체제인 CP/M을 만들던 Digital Research
(DR)였다. 그러나
당시 DR사의 사주였던 Gray Kildall은 PC에 맞춰서 수정된 CP/M을 개발해 줄 수 있느냐는 IBM의 제안을 무시했다
(주: DR사는
1991년 노벨에 인수합병 된다). DR사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IBM을 적극적으로 반겼던 것은 Microsoft였다. MS는
IBM의 제안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며 그 결과 DOS라는 운영체제를 IBM PC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수정한 후 다른 운영체제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가격(대략
2만에서 8만 달러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에 공급하는데 성공한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처음 개발할 때에는 시장의 수요에 대한 예측이 반드시 선행된다. IBM이
PC를 개발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IBM이 PC를 개발할 당시, IBM은 이후 운영체제 개발에 있어 독이 될 몇 가지
그릇된 가정을 세우고
있었다. 그 가정이란 다음과 같다. 1. 대부분의 PC를 소비하는 주체는 (퍼스널 컴퓨터임에도) 개인이 아니라 소규모 사업체가 될 것이다. 2. 대규모 사업체의 경우에는 PC가 아닌 메인프레임이나 수동형 단말기를 사용할 것이다. 3. 대규모 사업체에서 PC를 사용하는 경우는 일부 소수 부문에서일 것이며 그것도 각각의 PC가 서로 연결되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일 처리에만 쓰일 것이다. 4. PC는 하루 종일 한 가지 일에만 사용될 것이다. 즉, 한 대의 PC를 여러 가지 작업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PC의 운영체제가 싱글 태스킹 능력만 가지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시점에서 PC에 사용될 하드웨어 특히 인텔 8088 프로세서의 경우 이전 세대의 것보다 강력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멀티태스킹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IBM PC의 운영체제는 싱글 태스킹에 최적화
된 DOS가 차지
하였다. DOS가 운영체제로 선정 된 배경에는 다른 경쟁 운영체제와 달리 가격이 매우 낮았다는 것도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싱글 태스킹에 초점이 맞추어진 PC는 곧바로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David Both의
경험담을 그 예로 들어보자. 1984년 4월부터 1995년 9월까지 IBM의 advisory marketing support
representative로 재직했던 그는 PC가 출시되자마자 바로 구입해서 사용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구입했던 PC는
클럭 스피드
4.77 MHz의 인텔 8088 CPU에 96 KB RAM, 흑백 디스플레이 카드와 모니터, 80 CPS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갖춘 시스템이었으며
구입가격은 총 5000달러(지금의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470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이다!)였다. 1981년 당시 IBM PC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문서 작업을 할 일이 많았던 그는 EasyWriter라는 IBM 초창기의 워드프로세서(이 프로그램은 얼마 못 가서
사라진다)로 문서를 작성했는데
문서 작업을 하다 보면 무언가 계산을 해서 그 결과를 삽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PC로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는 못했고 작업간의
전환이라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5000달러짜리 컴퓨터를 앞에 놓고도 계산을 위해 10달러짜리 계산기를
더 구입해야만
했었다. 물론 계산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컴퓨터만을 이용해서 그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선 우선
EasyWriter로 작업하던
문서를 저장한 후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자신이 BASIC으로 직접 작성한 계산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 플로피를 이용해 컴퓨터를
부팅하고 나서 계산을
하고 그 결과를 종이에 받아 적어 놓은 다음 다시 EasyWriter가 담겨 있는 플로피로 컴퓨터를 부팅하고 문서를 불러 온
다음에 종이에 적어
놨던 계산 결과를 타이핑해야 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IBM이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리 개인이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바로 멀티태스킹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멀티태스킹 능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TSR (Terminate
and Stay Resident) 프로그램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볼랜드에서 만든 Sidekick과 같이 특정 키 조합을 이용해서
프로그램들 사이의
상호 전환을 쉽게 하는 것이다. 볼랜드의 Sidekick에는 달력, 노트패드, 일정관련 유틸 뿐만 아니라 계산 기능도 포함되어
특정한 키 조합을
이용하면 컴퓨터 재부팅 없이 이들 프로그램들을 옮겨 다니며 사용할 수 있었다. 1984년 : PC AT (Advanced Technology) 1984년 1월, IBM은 새로운 인텔 프로세서인 80286 프로세서를 사용한 최초의 PC인 PC AT
(Advanced Technology)를 공개 하였다. 이 새로운 컴퓨터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한
컴퓨터에서 두 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는 의미이다 (더 정확히는 하나의 프로세서에서 그렇게 한다는 뜻).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IBM의 광고용 사진에
나온 AT에는 두 대의 수동형 단말기(dumb terminal)가 달려 있었다. 어쨌든, 새로 나온 80286 프로세서는 이전의
8088과 비교했을
때 처리 속도도 5배나 빨랐고 640 KB의 메모리 한계도 넘어서서 이론적으로는 16 MB까지 확장 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 80286이 가진 이러한 특성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운영체제는 없었다. PC에서부터 채택 되었던 DOS의 버전은
3.x에 이르렀지만
그것은 기존의 싱글태스킹용 DOS를 개선한 정도에 불과했으며 고작 1.2 MB의 고밀도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더 지원된
정도였다. 결국
IBM과 Microsoft는 DOS는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운영체제의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IBM은 640
KB 이상의 메모리를 사용하며 동시에 멀티태스킹이 되는 새로운 버전의 운영체제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IBM, MS 양사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계속하는데 이 과정에서 1990년 양 사가 결별하게 되는 사소한 갈등이 일어난다. 그것은 80286
프로세서의 미래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었다. IBM은 PC AT 고객들과 한 약속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입장 - 이것은 David Both에
의하면
1956년에 Thomas J. Watson이 서명한 IBM의 내부 지령문서 2호에 선언된 것이었다 - 이었던데 비해 MS의 빌
게이츠는
80286은 조만간 사라질 프로세서이므로 이것을 위한 멀티태스킹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헛수고를 하기 보다는 84년 당시 인텔에서
개발 중에 있던
80386 프로세서를 대상으로 하는 멀티태스킹 운영체제를 개발할 것을 IBM측에 꾸준히 요구했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IBM과
MS는 PC AT를 위한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계속하게 된다. 나중에 OS/2 1.00이 되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아직 개발
중에 있던 당시
IBM과 MS는 각각 독립적으로 PC의 구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MS는 윈도의 첫 버전에 대한 개발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고 IBM은
도스 상에서 텍스트 모드로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스용 애드온 (add-on) 프로그램인 TopView를 개발하고
있었다. 최소한
IBM에서는 OS/2 1.00이 출시된 1987년까지 TopView를 사용하여 멀티태스킹을 구현하였다. 1986년 : 때이른 실망 IBM과 MS가 여전히 80286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는 동안 인텔에서는
1985년
4월 마침내 80386 프로세서를 발표하고 1986년에 출시하기에 이른다. IBM이 약속했던 PC AT용 멀티태스킹 운영체제는
아직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 주된 이유는 바로 80286에서 리얼모드와 프로텍티드 모드 간의 상호 전환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MS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작업은 그만큼 더 늦어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80386 프로세서마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컴팩의 경우 인텔이 386을 발표한 지 불과 1년만에 Deskpro라는 최고급 386
데스크톱 PC를 시장에
출시하였을 정도였다. 개발자들은 시장이 이미 286에서 386 프로세서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에 따라 286보다는
386을 위한 운영체제를
개발할 필요가 더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이 경우 운영체제가 상당히 복잡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새로운
운영체제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Note) 이 해 11월에 Microsoft의 Windows 1.0이 발표 되었다. 1987년 : PS/2 그리고 OS/2 1.00 1987년 4월, IBM은 자사의 심혈을 기울인 차세대 마이크로컴퓨터인 PS/2를 발표했다. 그 해
12월,
IBM은 OS/2라는 이름의 새로운 80286 기반의 프로텍티드 모드 운영체제를 출시했다. IBM은 이전에도 최상급
메인프레임용으로
OS/360이라는 운영체제를, 그리고 AS/400이라는 미니컴퓨터에는 OS/400이라는 운영체제를 공급한 바 있었다. OS/2는
바로 PS/2를
염두에 둔 운영체제로서 개발된 것이었다. OS/2 1.0은 텍스트 모드로 동작했고 배경에서 다른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한 화면에서는
하나의
프로그램만을 볼 수 있었다. OS/2 1.00은 8088에 대한 하향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스 프로그램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한적인 세션도 보장하고
있었다. 최대 디스크 용량은 32 MB였다. 비록 이 OS/2 1.00을 비롯한 모든 1.x 버전의 OS/2들은 80286에서
돌아가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80386에서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었다. 이 무렵, OS/2의 보급에 악재가 등장하였다. 당시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 반도체로부터 자국의
반도체 시장을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일본산 반도체 메모리 칩의 가격을 인상 시켰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메모리 칩 제조사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미국 내에서 RAM 품귀 현상을 불러와 결국 가격이 급등하게 만들었다. 당시
OS/2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4 MB의 램은 필요하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높은 RAM 가격은 RAM의 판매뿐만 아니라 OS/2의 판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IBM과 MS가 GUI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마우스도 사용하지 않은, 달리 보면
불완전한 OS/2 1.00을 서둘러 발표하게 된 데에는 Macintosh의 보급에 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매킨토시가
1984년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극히 소수의 사용자들에게만 이용 되었지만 OS/2가 출시된 1987년경에는 DTP 분야에서 매우 매력적인 제품으로
사용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킨토시는 Postscript와 고해상도 프린터 표준, PageMaker등의 여러 가지 훌륭한 사양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또한
Mac GUI까지 갖추고 있었다. (Note) 11월에 MS는 Windows 2.0을 발표하였다. 1988년 : OS/2 1.1 SE (standard edition) 1988년 10월, IBM은 OS/2 1.1 Standard Edition (SE)를 발표 했다. 이
버전에서
최초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GUI)가 도입되었다. 프리젠테이션 매니저 (Presentation Manager; PM)라고
불린 이 GUI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명령행 유저 인터페이스 (Command-line user interface; CUI)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친숙한 컴퓨터
운용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개발자들에게도 그래픽적인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PM은
프로그래머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꽤 많이 안겨주어 상당한 양의 재교육을 받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본다면 이 PM과 OS/2 API는
매우 강력하고 효율적인
것이었다. 이 버전에서부터 32 MB를 넘는 대용량 FAT 하드 드라이브가 지원되기 시작했는데 물리적으로 큰 용량을 가진
디스크를 최대 2
GB의 용량을 가지는 논리 드라이브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OS/2 1.00에 비하면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OS/2의 장래에는 많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당장 1988년 무렵 미국 안에서 사용되던 업무용 PC의 약 1/4 정도는 이미 386 시스템이었는데 OS/2는 여전히
80286 기반으로 개발
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점점 낡은 제품이 되어가는 286을 위한 운영체제 개발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386 시스템이 확산되고 또 IBM PC 호환기종들이 시장에서 대세를 이루어나감에 따라 폐쇄적인 MCA를
기반으로 했던
IBM PS/2의 판매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에다 IBM이 전략적으로 PS/2와 OS/2를 동일한 연장선에서 취급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OS/2를 PS/2의 전용 운영체제로 인식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PS/2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장
전략은 OS/2의
잠재 구매자들에게 PS/2의 구매를 압박하여 OS/2의 구매마저 감소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OS/2는 IBM PC 호환 기종의
약 20% 정도와
호환이 되지 않아 더더욱 판매가 부진하게 되었다. (Note) 1월에 MS Windows 2.03이 발표 되었다. 1989년 : OS/2 1.1 EE (Extended Edtion) 1989년 초 IBM은 그 전년도에 OS/2 1.1 SE와 함께 발표 됐었던 1.1 EE
(Extended
Edition)를 발매했다. 이 제품에는 Database Manager와 Communication Manager가 들어 있었는데
Database Manager는 현재는 DB2로 불리는 매우 강력한 멀티태스킹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이며 Communication
Manager는
현재도 조악한 asynchronous communication 프로그램들에 포함되어 있다. 1989년 Comdex에서 IBM과 MS는 OS/2 1.20 (SE, EE)을 공개하고 11월 발매
하였다.
이 버전에서는 개량된 프리젠테이션 매니저와 새로운 파일 시스템인 고성능 파일 시스템 (HPFS)이 등장했다. HPFS는 이전의
FAT 파일 시스템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파일 시스템으로 FAT 기반의 파일 시스템이 큰 파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단점을 극복한 것이었으며 이
후의 OS/2가
DOS와 다른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가 된다. HPFS는 이 외에도 FAT에 비해 매우 뛰어난 데이터 보전성 (data
integrity)를 제공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추가사항은 OS/2 1.20 EE 버전에 REXX 스크립트 언어가 포함 되었다는
점이다.
REXX는 매우 강력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완전한 프로그램 또는 확장 배치 언어로서 사용 가능하다. 이 언어는 컴파일러나 기타
다른 프로그래밍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 어플리케이션 구조(System Application
Architecture,
SAA) 언어이기도 하다. REXX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아주 간단한 일회용 프로그램에서부터 보다 크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데에까지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IBM은 처음에 이 REXX가 메인프레임과의 연결에만 이용될 것으로 잘못 판단함으로써 OS/2 1.20
SE 버전에는
포함 시키지 않았었다. 1989년 말, 운영체제의 개발은 세갈래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이미 언급한 OS/2 1.x
버전이고
나머지 두 개는 OS/2 2.0과 3.0이었다. 이 중 OS/2 2.0에 대한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제품은 출시된다면 최초의
PC용 32비트 운영체제가 될 것이었다. 특히 OS/2 2.0은 80386과 함께 그 후속으로 개발되던 프로세서를 대상으로 설계
되었기 때문에
80286과는 더 이상 호환 되지 않을 것이었다. OS/2 3.0은 개발의 매우 초기 단계에 있었고 당시엔 운영체제의 네트워크
서버 버전으로서
개발될 예정이었다. 이 운영체제는 2.0의 모든 기능을 포함하면서 마이크로커널의 상층부에 만들어짐으로써 플랫폼 비종속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운영체제가 돌아가는 하드웨어 타입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텔 프로세서뿐만 아니라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모토롤라,
선 또는 DEC
칩셋에서도 운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외의
운영체제로 주목할 것은 MS의 Windows 3.0이었다. 여전히 개발 중이기는 했지만
MS는 Windows 3.0을 통해 윈도 프로그램뿐 아니라 DOS 프로그램의 멀티태스킹 기능을 보여주었고 이는 곧 OS/2의
매출 하락을 불러왔다.
Window 3.0은 기존의 버전 1과 2가 넘지 못했던 640 KB 메모리 장벽을 넘기 위해서 상당 부분이 다시 작성 되었었다. (Note) 인텔에서 80486 프로세서를 발표 하였다. 1990년 : Microsoft Windows 3.0 그리고 결별 1990년 IBM과 MS는 여전히 함께 OS/2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1월에 있었던 MS사의
시스템
세미나에서 MS의 책임자들은 그들이 추진해 나아갈 운영체제의 방향에 대해 OS/2가 아닌 Windows 3.0을 선택하는 언급을
하였다. MS는
윈도의 개발에 더 많은 자원을 들였으며 자연히 OS/2의 개발에는 소홀하게 된다. 1990년 초 OS/2 2.0과 3.0의
개발은 순조로웠으며
2.0의 경우에는 초기 베타 버전이 이미 배포되기도 하였다. 90년 여름에 나온 OS/2 2.0의 베타 버전은 시장에 내어
놓아도 좋을 정도였으나
IBM은 여전히 출시를 미루고 수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90년 5월 21일 MS는 드디어 Windows 3.0을 발표하였다. 윈도 3.0을 운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양으로는 4 MB의 RAM과 60 MB 이상의 하드 디스크, VGA 그래픽, 마우스를 가진 386 컴퓨터는 되어야 했다.
1987년에서
1988년의 OS/2가 요구한 것과 비슷한 사양이었지만 결정적으로 90년 무렵에는 RAM 품귀는 이미 끝나 사용자들이 고성능의
PC를 구매하는데
별로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차이였다. 그리하여 윈도 3.0은 태풍처럼 전세계를 휩쓸었고 출시 한 달 만에 OS/2가
3년 동안 팔린 것보다
더 많은 양이 팔려 나갔다. 누가 보아도 윈도의 승리였다. 결국 많은 수의 OS/2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윈도용 소프트웨어
개발로 전향하고 말았다. 1990년 후반, MS는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OS/2의 개발을 지속할 것을 보장한다는 공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바라는 IBM의 관점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양사의 결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IBM은 비록
사양길에 접어
들고 있긴 했으나 OS/2 1.x 버전에 대한 개발 및 유지 권한과 함께 OS/2 2.0 버전에 대한 개발 권한을 양도 받고
MS는 OS/2
3.0 버전의 개발을 이어 받게 되었다. MS는 얼마 후 OS/2 3.0을 Windows NT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1년 : OS/2 1.30 1991년 초에 IBM은 OS/2 1.30(SE, EE)을 발매 하였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IBM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OS/2 버전이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몇몇 MS 코드들이 있었지만 새로 작성되었거나 또는 1.30에서 유용한
상당수의 코드들은
IBM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OS/2 1.30은 이전 버전에 비해 크기도 더 작아지고 빨라졌으며 보다 안정적이고 보다
많은 장치들을 지원했다.
확실히 OS/2 1.10이나 1.20과 비교해 보았을 때 MS의 윈도는 사용하기 쉽고 훨씬 더 많은
장치드라이버를 제공하고 있었다. 프린터를 설치하고 설정하는 과정을 예로 살펴보자. 윈도의 경우라면 드라이버 설치 파일을 실행
시켜 설치하고 설치가
끝나면 설정 프로그램을 띄워 설정을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OS/2 1.20의 경우에는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여러
가지 단계를 밟아야
했다. [프린터 장치 드라이버를 설치한다 - > 프린터 큐를 설치한다 - > 프린터 오브젝트를 생성한다
- > 프린터 장치 드라이버와
오브젝트를 연결한다 - > 프린터 큐와 오브젝트를 연결한다 - > 시리얼 프린터에
대해 COM 포트를 설치하고 설정한다 - > SPOOL 명령으로
프린터 결과물을 원하는 포트로 보낸다 - > 기타 프린터 설정을
잡아 준다] 일반인들이 OS/2를 어렵게 느끼는 건 당연했다! IBM이 OS/2 1.30을 만들면서 이렇게 복잡했던
프린터의 설치와 설정은 훨씬 간단해졌다. IBM은 이것을 위해 프린터 매니저를 완전히 다시 작성했을 정도였다. 물론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던 것이다. OS/2 1.30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하고 새로우며 개선된 기능들이 추가 되었다. 1. 이전에는 EE 버전에만 들어 있던 REXX가 SE 버전에도 포함되었다. 2. Adobe Type I 포맷의 폰트가 내장 되었다. 3. 프롬프트 세션이 새롭고 보다 가독성이 좋은 폰트들이 사용되었다. 4. Lazy Write가 HPFS에 추가 되었다. 5. 성능 향상을 위해 스와핑 알고리즘이 개선 되었다. 6. 비디오 장치 드라이버가 개선되어 1024x768의 고해상도 모드가 지원되었다. (Note 1) MS에 의해 윈도 NT가 된 OS/2 3.0은 본래 미래지향적인 아키텍처 비종속형
운영체제였다.
윈도 NT로 개명 될 당시에도 여전히 MS는 UNIX나 OS/2 프로그램도 모두 실행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언급했으며 1992년
말까지는 발표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91년 말에 MS는 OS/2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고 1992년에는 UNIX에 대한 지원 또한
철회하였다. 결국 윈도
NT는 1993년 7월에 출시된다. 또한 비록 MS는 IBM과 결별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상당수의 IBM 기술, 예를 들면
Object
Linking and Embedding (OLE)이나 Dynamic Data Exchange (DDE)에서 파생된
Component
Object Model (COM)과 같은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것들에 대한 광범위 교차 라이선스
(broad-ranging cross licensing agreement)를 유지하고 있다. (Note 2) 1991년 MS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공개적으로 IBM을 비난한 후에 IBM은
그들의
LAN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음을 공표하였다. LAN은 유타 주 Provo에 있는 Novell사에 의해 주도되어 왔는데 1986년
이래로 IBM과
MS는 이러한 노벨의 시장점유율을 깎아 내리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계속해 왔었으며 그 일환으로 MS의 주도하에 OS/2 기반의
LAN
Server와 LAN Manager가 개발되었다. 1991년 2월에 IBM은 노벨의 LAN에 따라 IBM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PC LAN과
메인프레임을 고속을 연결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MS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전 버전의 LAN Manager가 IBM의 LAN
Server와 상호
접속이 가능했던 것과는 달리 버전 2.1에서부터는 더 이상 LAN Server가 지원되지 않게 하였다. (Note 3)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학생이었던 리누즈 토발즈에 의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리눅스
프로젝트가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1992년 : 최초의 32비트 PC용 운영체제의 시작 - OS/2 2.00 MS가 더 이상 OS/2를 위한 유저 인터페이스 개발을 하지 않자, IBM은 이것까지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시기에 IBM은 Commodore사와 거래를 하게 되는데, Commodore는 자신들이 만든 AmigaOS에 IBM의
REXX 스크립트 언어를
포함시킬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얻고 IBM은 새로운 GUI 개발에 AmigaOS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1992년 봄, OS/2 2.00이 출시 되었다. PC용으로서는 최초(몇 년 동안은 유일했다)의 진정한 32비트 운영체제였던
OS/2 2.00은
91년에 “윈도보다 더 나은 윈도, DOS보다 더 나은 DOS”가 되겠다고 IBM이 공언했던 목표를 이루어냈다. 그것은
OS/2가 마치 완전히
독립적인 여러 대의 컴퓨터로 이루어진 것처럼 동시에 많은 도스(윈도) 프로그램들을 돌릴 수 있게 해 주는 가상 DOS 머신
(Virtual
DOS Machines, VDMs)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도스 프로그램만을 놓고 본다면 실제로도 독립적인 여러 대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었다. 윈도용 프로그램은 Win-OS2라고 불린 IBM 라이선스 버전의 윈도 3.0에서 돌아갔다 (이후에 출시된 윈도 3.1은
지원하지 않았다). OS/2 2.00에서 각각의 도스 프로그램들은 서로 분리된 탓에 어느 한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프로그램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윈도 세션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각각 다른 가상 도스 머신에 위치 시킴으로써 서로
충돌 없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각각의 프로그램들은 Dynamic Data Exchange (DDE)와 클립보드를 통해 서로 연결
되었다. 이
버전에서 워크플레이스 쉘 (WorkPlace Shell, WPS) 유저 인터페이스가
도입되었다.
덕분에 OS/2는 이제 완전한 객체지향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갖춘 32비트 운영체제가 된 것이었다. IBM의 시스템 지향
모델
(System Object Model, SOM)에 기반한 WPS는 여전히 모든 GUI의 모델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어떤
것도 그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 주 : 지나치게 WPS를 높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WPS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습니다) 이 WPS는 파일 시스템을 포함한 운영체제 거의 전부를 통합함으로써 GUI를 한 세대 더 발전 시켰다. (Note) 3월 MS Windows 3.1이 발표되었다. 1993년 : OS/2 2.10 여러
달의 시험을 거친 끝에 마침내 1993년 5월, IBM은 OS/2 2.10을 출시하였다. 이
최신
버전은 더욱 빨라지고 디스크도 좀 더 적게 차지하였다. 또한 완전한 32 비트 그래픽 서브 시스템에 Win-OS2 세션을 위한
True
Type 폰트와 같은 윈도 3.1의 지원, 거기에 사운드와 비디오 멀티미디어 기능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 매니저
(Multimedia Presentation Manager, MMPM/2)로 주목을 받았다. MMPM/2에 있는 애플릿들은
사운드 파일과
MIDI, 음악 CD, 디지털 동화상을 재생할 수 있었다. MMPM/2는 동화상용 하드웨어가 없어도 1초에 30프레임의 디지털
동화상을 재생할
수 있다. OS/2 2.1에서는 신용카드 크기의 어댑터 카드를 사용하기 위한 산업표준인 PCMCIA 2.0 서비스
규격도
지원했다. 사용자들은 컴퓨터 전원을 끄거나 켤 필요 없이 바로 카드를 꽂아서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업계 표준인 개선된
전원 관리
(Advanced Power Management, APM) 기능을 통해 전력 사용을 줄임으로써 휴대용 랩톱 PC의 배터리 수명을
늘려 줄 수 있었다.
IBM은 이미 윈도를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OS/2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MS와의 윈도
코드 사용
계약이 만료된 탓이라고도 한다) 1993년 말에 윈도 코드를 제거한 버전을 만들어서 이것을 OS/2 2.1 for
Windows라는 명칭으로 발매
하였다. 이 버전은 Win-OS2를 내장하고 있지 않은 대신, 이미 설치되어 있는 윈도 3.1을 이용해서 OS/2가 윈도
프로그램을 동작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윈도의 SYSTEM.INI와 WIN.INI 파일들을 약간 수정하고 OS/2가 VDMs에서 윈도 3.1
코드를 조정할 수
있도록 윈도 3.1 코드를 메모리에 끌어 당겨 놓는 방식으로 동작하였다. OS/2 2.10 이후 IBM은 symmetric multi-processing (SMP) 기능을
지원하는
OS/2 2.11 버전을 출시(1994년)했는데 OS/2 2.x 버전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빈틈없이 윈도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윈도 3.x 유저들을 어느 정도 (OS/2 쪽으로) 끌어 들일 수 있었다. OS/2의 안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IBM은 “충돌
방지
(Crash-Proof)”라는 상표를 붙이기도 하였다. (Note) 인텔에서 펜티엄 프로세서를 발표 하였다. 1994년 : 워프의 시대가 도래하다 - OS/2 Warp 1994년 10월 OS/2 버전 3이 OS/2 Warp for Windows라는 이름을 달고 첫 선을
보였다. OS/2 2.11 for Windows와 같이 거기엔
Win-OS2가 들어 있지 않고
윈도 3.1에 의존해서 윈도 프로그램으로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Win-OS2를 내장한 완전한 버전의 OS/2 Warp 3은
그보다 약간 후인
11월에 출시 되었다. 이 버전은 인터넷 지원이 기본 내장된 최초의 PC 운영체제였다. 그 당시 OS/2 비평가들은 인터넷
지원을 두고 엄청난
낭비라고 평했었으나 오늘날 모든 주류 운영체제들은 하나같이 인터넷 접속을 기본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워프 3.0은 대단히
발전된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Windows가 내장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OS/2 워프 3은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워프 3은
겨우 4 MB의 램을 가진 컴퓨터에서도 설치되고 동작되도록 설계 되었으며 실제로 그 조건에서도 잘 작동했다. 비록 많은
응용프로그램들이 4
MB보다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기는 해도 말이다. 워프 3는 4 MB에서의 성능도 쓸만했지만 램의 용량이 더 커지면 그만큼 성능이
크게 좋아졌으며
그 외에도 더욱 많은 장치 드라이버들이 포함되고 설치가 간편해져 굉장히 많은 PC 및 주변장치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
버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개선되었다. 1. OS/2의 예전 애플릿들이 하나의 세트로 통합 되었다 (IBM Works). 여기에는 워드 프로세서, 스프레드 시트, 데이터베이스,
차트, 리포트 작성기, 통신 기능, 개인 정 보 관리 프로그램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Footprint Software사의 Footprint
Works였다. 2. 뛰어난 인터넷 접근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TCP/IP 통신 프로그램과 Internet e-mail, 파일 전송,
기타 여러 가지의 유틸리티들이 포함되어 있다. OS/2 워 프 3에서는 IBM Global
Network를 통해 버튼 한 번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용자가 어떻게
연결을 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 었다. 3. 별도의 보너스 팩에는 CompuServe Information Manager라는
CompuServe에 접근할
수 있는 OS/2용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으며,
OS/2용의 팩스 도구인 FaxWorks도 들어 있고 LAN을 통해 여러 PC 사용자들이
각자의 화면에 공유된 칠판을 보면서 서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Person
to Person이라는 워크그룹용 응용프로그램도 들어 있었 다. 4.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인 WPS에는 자주 사용하는 오브젝트와 프로그램을 단 번에 작동시킬 수 있는
론치패드(LaunchPad)가
추가 되었다. 5. 인쇄작업의 성능, 멀티미디어 지원, PCMCIA 지원 등이 개선되었다. 1995년 : 워프 커넥트 (Warp Connect) 1995년 출시된 Warp Connect는 워프 3의 모든 기능들과 함께 네트워크 연결 및 각종
도구들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었다. 워프 커넥트의 peer 기능을 이용하면 클라이언트 워크스테이션끼리 서로 네트워크 상에 있는 여러 자원들 즉,
파일이나 프린터 또는
모뎀등을 공유할 수가 있다. LAN Server 4.0과 Netware requester를 사용하면 자주 사용되는 대부분의
네트워크 서버 환경에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워프 커넥트가 출시된 이후로 OS/2는 IPX, TCP/IP, NetBIOS를 포함한 모든 프로토콜에
대해 완전하게 네트워크를
지원하게 되는데 이런 점 때문에 OS/2에 대한 초점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networked computer)”에
맞춰졌다. (Note) 이 해 8월 세간의 관심 속에 MS사의 Windows 95 (코드명 시카고)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 : 워프 서버 (Warp Server)와 워프 버전 4 (Warp 4) 1996년 2월, IBM은 워프 서버를 출시하였다. 이 기념비적인 제품은 워프 3의 힘과 기능에 LAN
서버
4.0 제품의 네트워크 서버 기능을 합쳐 놓은 것이었다. LAN 서버에 상대적으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고 이전에 발표 되었던
몇몇 독립적인 제품들을
합쳐 놓음으로써 워프 서버는 서버 환경을 선도하였다. 워프
서버는 다른 서버 시스템에서라면 추가 비용을 들여야만 했을 여러 가지 기능들을 기본 내장하고 있다.
OS/2 워프 서버는 통상적인 파일, 프린터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여러 응용 서버 환경을 위한 통합 플랫폼으로도
손색이 없다. 워프 서버는 OS/2 워프, LAN 서버, OS/2용 SystemView, 원격 접속, 고급 백업 기능과 함께
새로워진 인쇄 기능,
특히 비 포스트스크립트 프린터에서 포스트스크립트를 인쇄하는 기능을 모두 포함하는 통합 꾸러미이다. 이 해(96년) 말, IBM은 Warp Server Advanced의 SMP 버전을 출시하였다. 워프
서버 SMP는 Symmetric Multiprocessing (SMP) 기능을 통해 운영체제로 하여금 작업 부담을 분산하게 해
줌으로써 여러 개의
프로세서들 사이의 작업 부담이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있다. 이런 SMP 기능이 내장된 OS/2 Warp Server
Advanced는 MS의
NT Server 3.51보다 약 25% 정도 그 성능이 뛰어났다. OS/2 Warp Server Advanced에 있는 SMP
기능은 오늘날에
사용되는 대다수 SMP 하드웨어 플랫폼이랄 수 있는 2-way 및 4-way SMP 시스템에 최적화 되어 있지만 곧바로 64개의
프로세서 - 시장에서
다른 SMP가 지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 를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Ziff-Davis 연구소에서는
프로세서 하나를 더
추가하면 처리량에서 90%, 프로세서 3개를 추가하면 300% 정도 처리량에서의 향상을 보이는 것을 관찰한 바 있다. 이것은
윈도 NT에서 측정한
것보다 상당히 더 좋은 값이다. SMP 기능은 32 비트 SMP용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 SMP
응용프로그램의 성능까지
향상 시켰다. 1996년 8월 코드네임 멀린으로 불린 OS/2 Warp 4가 출시 되었다. 새로워진 모습에는 좀 더
예뻐진
GUI 즉, 전 애플 프로그래머에 의해 디자인된 새로운 그래픽 아이콘들과 위젯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란 것은
겉보기 이상이었다.
그 외에도 WPS가 크게 개선되었고, OpenGL, OpenDoc가 지원 되었으며 Java 가상머신을 포함한 모든 Java
개발킷도 지원 되어
브라우저를 무엇을 쓰는가에 관계없이 자바 응용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고급 시스템용으로 VoiceType
Dictation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용자들은 키보드나 마우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컴퓨터를 뒤져보거나 컴퓨터로 하여금 문서를 받아 쓰게 할 수 있었다
(한글판에서는 지원되지
않은 기능). MS는 겨우 그 길을 따라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워프 4는 다음과 같은 네트워크 연결 특성 덕에 IBM으로부터 “보편적(universal)” 클라이언트라고
불렸다. 1. 워프 4는 LAN 서버, 워프 서버, 윈도 NT 서버, 노벨 넷웨어, 넷웨어 디렉토리 서비스, PC LAN 프로그램,
IPX-SPX, Warp Connect, Windows NT Workstation, Windows 95, Windows for
Workgroups, TCP/IP (including DHCP, DDNS, FTP, TFTP, Telnet, SLIP, PPP,
SMTP, and SNMP),
SNA, NetBIOS 등등에 동시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적인 네 트워크 클라이언트를 사용해서 어디서 어떤
것에도 연결을 할 수 있었다. 2. 자바가 워프 4안에 내장되어 강력하고 쉬운 자바 응용프로그램을 로컬 또는 웹에 서 사용하기 위해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3. VoiceType speech recognition 기능 덕에 워프 4는 별도의 소프트웨어 없이
음성 navigation과
dictation이 동작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운영체제가 되었다. 4. WarpGuides는 일반적인 작업을 위한 지능적인 자동 설정 가이드를 제공하는데 이 것은 오투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5. 한 번의 클릭으로 원하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6. DMI (Desktop Management Interface) 지원을 포함하는TME 10
NetFinity (SystemView) 기능 7. 집에서나 거리에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Remote Access Services
(LAN Distance)가 있다. 이 서비스는
임시 또는 응급 사용을 위한 ad hoc WAN 설정도 할 수 있게 해준다. 8. Mobile Office Services는 길에서도 사무실과 파일을 연동하고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1999년 : Warp Server for e-Business 1999년, 코드네임 오로라(Aurora)로 불린 OS/2 Warp Server for
e-Business
(WSeB)가 출시 되었다. WSeB에는 다음과 같은 기능들이 담겨 있다. 1. Y2K 완전 대응 2. 유로화 지원 3. 국가 언어 지원 로케일을 정의하고 유지하기 위한 그래픽 환경 포함 4. 넷스케이프 4.04의 지원 5. 웹사이트 호스팅 목적으로 Lotus Domino Go Server 사용 6. WebSphere Application Server 1.1 7. NT Server Management 포함. 이 기능은 OS/2와 NT 계정의 동조를 유지
시켜주는 기 능을 가지고 있는 OS/2 시스템에서
NT 도메인과 서버를 관리할 수 있게 해 준다. 8. I2O (Intelligent I/O) 지원 9. SMP 지원 10. 네트워크 간 파일을 공유하기 위한 NFS 지원 11. Logical Volume Management (LVM)의 지원. LVM은 위치에 의존하지 않는
논리
볼륨을 만들 수 있게 해 주며 여러 개의 물리적인
디스크 드라이브를 논리 볼륨으로 묶 어 두게 할 수도 있고 유저들이 시스템을
재부팅 하지 않고도 논리 볼륨의 크기 를 확장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12. 저널링 파일 시스템(JFS) 지원. 저널링 파일 시스템은 좀 더 빠른 성능, 고용량 디스크, 향상된 범위성과 더 빠른 복구성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부팅 가능 CD와 좀 더 새로워진 TCP/IP 스택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으며 유저
인터페이스로는
워프 4의 객체지향 유저 인터페이스 (Object Oriented User Interface, OOUI)를 사용하고 있다. (Note 1) IBM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네트워크 컴퓨터를 위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제공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는 다음 표에서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Note 2) 1998년 6월에는 MS가 Windows 98을 출시 하였다. Windows 98은
MS의 운영체제
중에서 최초의 완전한 32비트 운영체제로 알려졌다. 2000년 : eComStation의 등장 1996년 4월 이후, IBM이 더 이상 새로운 버전의 OS/2 Warp 클라이언트 운영체제를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사용자들은 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IBM이 마지막으로 내놓았던 것은 서버 버전이었던 WSeB로 커널 버전은
4.5인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IBM은 그러나 여전히 클라이언트를 업데이트 하고 있었고 또 클라이언트의 여러 부분을 서버로 이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만약 어떤 회사가
나서기만 한다면 이미 존재하는 OS/2를 이용하고 거기에 필요에 따라 자신만의 향상된 기능을 집어 넣은 OEM 클라이언트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대두 되었다. 실제로 OS/2 소프트웨어 제작사 중 하나였던 Stardoc (Object Desktop 제작사)는
IBM에 이런 제안을
내어 놓았지만 거절 당한 바 있다. 그 다음으로는 OS/2 기반의 vertical application (매우 제한적인 용도를
가진 응용 프로그램을
가리킴. 예: 환자 관리용 프로그램, 보험 결제용 소프트웨어 등)을 팔던 IBM 협력 업체인 Serenity Systems가
2000년 4월
29일에 “과연 OS/2 커뮤니티가 eComStation이라고 명명된 WSeB 기반의 e-business용 manage
client에 관심을 가질지
어떨지”를 논의할 목적의 디스커션 그룹을 만들었다. 그 때 사실상 OS/2 클라이언트의 OEM 버전이랄 수 있는 새로운 비(非) 원격 부트 클라이언트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2000년 당시에는 더 이상 새로운 버전의 OS/2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Convenience Pak
for Warp 4 (커널 버전 4.51, MCP)라고 하여 서버 버전 4.5에 대한 업데이트가 포함된 데스크톱 버전이 하반기에
발표되었다.
eComStation (eCS)는 9월에 프리뷰 버전이 발표 되었다. (Note) 이 해 2월 MS Windows 2000이 출시 되었다. 2001년 : eComStation 1.0 2000년에 디스커션 그룹에서 결정된 eCS에 대한 반응은 IBM에서도 동조할 만큼 긍정적이었고 그
결과로
2000년 프리뷰 버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2001년 7월에 WSeB와 Convenience Pak 1에 기반한
eCS 버전
1.0이 출시 되었다. 이 버전은 (버그가 좀 있는) 인스톨러와 몇 가지 유용한 서드파티 도구 및 애드-온 유틸리티들이 통합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CS 1.0의 몇 가지 기능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저널링 파일 시스템 2. 서드파티 프로그램 설치를 위한 와이즈 머신 3. 웹브라우저 기반의 원격 조정 프로그램인 IBM Desktop on call 프로그램 제공 4. Lotus Smartsuite 1.6 5. StarOffice 5.1a 6. eCS Style lite 7. 보너스 팩 8. 개선된 인스톨러 (Note) 10월 MS Windows XP가 세상에 나왔다. 2003년 ~ 현재 현재까지 eComStation은 Serenity, IBM 뿐만 아니라 여러 기타 업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개발되고 있다. 2003년에는 Convenience Pak 2 (MCP 2)에 기반한 eComStation 1.1이 출시
되었다. 이 버전은
1.0에 비해 크게 개선된 인스톨러와 좀 더 다양해진 도구 및 애드온 프로그램들이 통합된 모습을 보였다. IBM은 2006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OS/2에 대한 서비스 종결을 발표(2005년 7월 12일, http://www-306.ibm.com/fcgi-bin/common/ssi/ssialias?infotype=an&subtype=ca&appname=Demonstration&htmlfid=872/ENUSWP05-1209
)하고 OS/2에 대한 지원을 접었다. 많은 사용자들은 Serenity Systems가 IBM의 소스 코드에 접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eComStation을 내놓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Serenity의 얘기에 따르면
‘사업이 되는 한’
eComStation은 계속 개발되고 판매될 것이라고 한다. eComStation의 릴리즈 버전 (구체적인 날짜는 표시하지 않았다) 1. eComStation Preview : 2000년 9월 2. eComStation 1.0 : 2001년 7월 3. eComStation 1.1 : 2003년 4월 4. eComStation 1.2 : 2004년 8월 5. eComStation 1.2R (media refresh) : 2005년 11월 6. eComStation 2.0 : 2005년 이후 테스트 중에 있으며 2007년 3월 현재 베타 4
버전임. (Note) 2003년 4월 MS Windows Server 2003이 출시 되었으며 2005년
12월에는
Server 2003 R2가 출시 되었다. 그리고 2006년 겨울 Windows Vista가 출시 되었다. 참고문헌 (순서없음) 1. David Both, “A short history of OS/2”, 1996 http://www.millennium-technology.com/HistoryOfOS2.html 2. Mark Minasi 지음, 김성희 번역, “Inside OS/2 Warp Version 3”,
인포북
1996 3. OS/2 BBS.COM, “History of OS/2”, http://www.os2bbs.com/os2news/OS2Warp.html 4. Wikipedia, “eComStation”, http://en.wikipedia.org/wiki/EComStation 5. OS/2, eComStation 사용자 모임, “OS/2의 Timeline”, 2007 http://www.ecomstation.co.kr/doc/1.1.php 6. IBM Corp., “Migrating to OS/2 Warp Server for
e-business”,
IBM redbooks 1999 http://www.redbooks.ibm.com/redbooks/pdfs/sg245135.pdf 7. Wikipedia, “Microsoft Windows”, http://en.wikipedia.org/wiki/Microsoft_Windows 목차로 가기 |
eComStation ArcaOS | 예전 사이트소개 / 새 사이트소개 | 설치 관련 도움 요청 | 초기화면 가기 |
Copyright © 1995-2021 |